사람의 기억이나 일생의 사건들을 나열하여 한편의 영화처럼 재구성한다면 어떤 형태를 지니고 있을지 예상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는 표현처럼 장면으로 빼곡히 채워진 필름의 모습이 떠오른다.국대호는 자신의 기억과 해석을 색과 붓질에 투영하여 실록 사관처럼 캔버스에 기록하며 재구성한다. 작가의 개인적인 사유로 그려진 작품이지만 사람의 이야기라는 단순한 열쇠를 통해 감상자는 어렵지 않게 자신의 경험과 일치할 수 있는 요소를 화면에서 찾으려 몰두할 수 있다.
작품에 보이는 높은 채도의 물감은 동시대 전자음악 공연장의 조명이 뿜어내는 현란한 색상의 광선을 연상케 한다. 색상의 조화에 무심한듯 배치된 선들은 작가가 부여한 긴장감 있는 균형을 지니고 있다. 눈부신 조명은 사람에게 일종의 불쾌한 장치이지만 현장의 분위기를 장르에 적합하게 조성하는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며 감상자가 느끼게 될 쾌감을 극적으로 강화한다. 화면을 구성하고 있는 색은 사람이 지닌 유선형 신체를 차갑게 제어하는 수직 수평적인 방향으로 칠해져 있다. 캔버스를 뒤덮은 다채로운 마티에르로 인해 감각에 몰두하여 그려진 작품이라고 오해하기 쉽지만 감각이 자아내는 우연적 효과 따위에 기대는 그림이 아니다. 작가가 치밀하게 계획한 붓질의 속도와 물감의 농도, 색의 조합과 덧칠 등 냉철한 지성으로 그려졌다. 아크릴과 유화는 성분차이로 인해 하나의 화면에 동시에 자주 사용되는 재료는 아니지만 작가는 두 종류의 물감이 캔버스 표면에서 자리잡는 위치를 정교하게 구분하여 미묘한 질감의 차이를 만들어내며 앞서 이야기한 요소들과 더불어 화면에 생경한 운율감을 조성한다. 짙은 농도로 새겨진 붓질로 맞붙은 색의 충돌에서 비롯된 파편의 조화는 사이키델릭한 분위기를 만들며 시야를 채운다.
여러 겹 중첩된 후 붓으로 당겨진 물감의 표면은 건조된 정도의 차이에 따라 이전에 칠해진 다른 색의 물감과 섞이거나 찢어지며 엉겨 붙었다. 캔버스 모서리에 맺혀 있는 마티에르의 끈적한 요철은 박제된 작가의 행위이기도 하다. 그림 표면에 드러난 풍부한 질감과 흔적들은 캔버스를 가르며 물감을 짓누른 힘의 강도와 근육의 속도를 유추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물감으로 제작된 작품이기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회화적 효과들은 동시대 음악의 소리를 왜곡시키거나 증폭하는 디지털 장치처럼 기계적인 혼돈을 만들어내지만 작가가 허용한 범위안에서 정교히 조절된 강도로 반복되며 화면 전체를 인간적인 질서로 매듭짓는다.
화면을 분할하는 동시에 조합하는 색은 무작위적으로 보이지만 작곡 프로그램 화면을 가득 채운 가상악기의 파장처럼 필요한 만큼의 채도와 농도가 계산적으로 적재적소에 분배되어 있다. 국대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음악성이란 단순히 다양한 색상과 질감으로 인해 느껴지는 시각요소의 풍부함 따위가 아닌 다른 장르의 예술을 만들어내는 과정에 포함되는 도구의 구조와 정교한 체계, 이를 다루는 작가의 주도면밀한 의도이며 붓질로 날카롭게 조련한 회화의 규칙이다.
ArtWorks
S202397978 97x97cm
acrylic & oil on canvas, 2023S202310014 168x112cm acrylic & oil on canvas, 2023S202310014 168x112cm acrylic & oil on canvas, 2023S2022D1003 d100cm acrylic & oil on canvas, 2022S202310014 168x112cm acrylic & oil on canvas, 2023S202310014 168x112cm acrylic & oil on canvas,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