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살아가며 목도하는 기이하고도 경이로운 현상에서 이야기를 찾고 싶어하는 동시에 담고 싶어한다.
내가 본 것, 나에게 일어난 사건을 전하고 설명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순간을 박제하기 위한
정교한 방법이 필요하다. 글자, 기호와 그림으로 경험을 보존하기
위한 욕망은 사람이 다른 생물에 비해 귀중히 여기는 사물 중 기록물이라는 차별화된 개념을 발전시켰다. 더
깊게 나아가 타인에게 이해시키고 증거할 필요 없이 간직하는 이야기도 독특한 가치를 지니게 된다.
김덕용은 떠나간 이들이 혹여 자신의 그리움을 알아 봐줄까 하며 빼곡한 편지처럼 목판에
광휘를 아로새긴다. 하늘을 수놓은 빛의 궤적과 수면을 뒤덮은 윤슬, 책장
가득한 이야기가 발하는 고요한 찬란함은 인연이 지나간 자취를 보듬을 수밖에 없는 남겨진 사람의 착잡함과 고마움이다. 그리움에는 즐거운 기억과 빈자리에 대한 원망이 뒤섞여 있다. 가슴을
무겁게 누르는 감정의 덩어리는 완벽히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꺼려지는 모순이 있지만 홀로 내쉬는 한숨으로 요약하며 집요한 질문을 쫓아낸다.
작가는 작품을 제작하는데 사용된 기법의 복잡성으로 경이로움을 자아내기보다는 단순하고
직관적이며 많은 반복이 필요한 길고 고된 행위를 화면에 드러낸다. 목판에 지문처럼 빼곡한 결을 파내고
요철사이에 잘게 쪼갠 자개조각을 채운다. 화면 가득한 결은 자개가 위치하고 고정되기 위한 역할로 그치지
않는다. 함축적이지만 난해하지 않은 그림으로 유추되는 이야기와 어우러지는 분위기를 조성하며 획의 방향성이나
밀도 등의 차이로 의미가 담긴 조형 요소이다. 지나간 인연이라는 단어와 화면에 보이는 사물과 표현이
어우러지며 김덕용의 작품 전반에 다루어진 시간성을 암시한다.
김덕용의 작품은 화려하기 위해 애쓰기 보다 차분히 진실되게 쓰인 편지처럼 작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공감하기 어렵지 않은 장면으로 채워져 있다. 동시대의 드라마처럼 관객의 감정을 동요하기 위한
자극적인 화면을 그리지 않았다. 삶을 살아오며 떠난 인연이 많아진 사람에게 더 풍부하게 다가올 절제된
표현의 틈에 인내와 그리움이 베여 있기 때문에 시대가 지나도 흐려지지 않을 향기를 지니고 있다.